조선 건국의 갈림길: 이성계와 정몽주, 동지에서 결별로

위화도 회군(1388)과 선죽교 사건(1392)을 축으로, 이성계·정몽주의 관계가 협력에서 결별로 이동하며 조선 건국이 현실이 된 과정을 핵심 사건과 관점으로 정리합니다.

위화도 회군 결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역사 일러스트

고려 말, 나라는 흔들리고 있었다. 왜구의 침입과 권문세족의 전횡, 무너진 민생 속에서 두 인물은 같은 시대를 살았다. 무장 이성계와 성리학자 관료 정몽주. 조선 건국이라는 거대한 전환은, 두 사람의 관계가 ‘협력 가능성’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결별’로 이동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1) 같은 시대를 산 동지: 현실주의자와 원칙주의자

흔히 이성계는 ‘조선을 세운 혁명가’, 정몽주는 ‘고려에 끝까지 충성을 바친 충신’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둘의 출발점은 생각보다 가깝다. 둘 다 “고려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고, 부패한 권문세족과 무너진 민생을 직시했다.

다만 해결 방식이 달랐다. 이성계는 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답게 가능한 선택지 중 최악을 피하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정몽주는 학문과 외교로 국가를 지탱해온 관료답게 정통(명분)을 무너뜨리면 국가 운영의 규칙이 사라진다고 보았다. 둘은 적이 아니라, 서로 다른 도구를 가진 ‘동업자’에 가까웠다. 적어도 한동안은.

고려 말 조정의 혼란
권문세족의 전횡과 혼란한 고려 말 조정


2) 위화도 회군: 관계의 균열이 시작된 순간

1388년, 요동정벌 명령을 받은 이성계는 압록강 위화도에서 회군을 결단한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판단을 넘어, 낡은 질서를 거부한 정치적 선택이었다. 회군은 곧 권문세족·최영 세력의 축을 무너뜨리고, 신진사대부와 이성계 세력이 정치 전면으로 등장하는 출발점이 된다.

정몽주에게 이 사건은 곤혹스러웠다. 그는 부패한 권문세족을 비판했던 신진사대부의 일원이었지만, 동시에 고려의 ‘정통’을 지켜야 하는 조정의 핵심 관료였다. 회군 이후 그는 체제 안에서 수습과 개혁을 모색하며, ‘붕괴를 막는 정치’를 선택했다.

위화도 회군
1388년 위화도에서 내려진 회군의 결단

3) 마지막 설득전: 하여가와 단심가의 정치학

이성계 진영은 점점 “고려라는 그릇은 이미 깨졌다”는 쪽으로 움직인다. 반면 정몽주는 “그릇이 깨졌다고 해서 식탁을 불태울 수는 없다”는 태도에 가깝다. 그래서 이성계에게 정몽주는 단지 유능한 관료가 아니라, 고려의 도덕적 권위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새 질서가 필요했던 쪽은 정몽주 같은 ‘상징’이 절실했다.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서 이방원은 정몽주를 설득하기 위해 ‘하여가’를 내세운다. “이런들 어떠하리…”는 결국 “체제가 바뀌어도 함께 나라를 운영하자”는 제안이다. 정몽주는 ‘단심가’로 답한다. “이 몸이 죽고 죽어…”는 개인의 비장함을 넘어 “정통을 버릴 수 없다”는 정치적 선언이었다. 협상은 여기서 사실상 끝난다.

이성계와 정몽주의 대비
같은 시대, 다른 선택을 상징하는 이성계와 정몽주

4) 선죽교: 한 사람의 죽음, 한 왕조의 퇴장

1392년, 개성 선죽교에서 정몽주는 피살된다. 이는 개인적 비극을 넘어, 새 왕조의 탄생을 가로막던 마지막 ‘도덕적 방파제’가 무너진 사건이었다. 정몽주가 살아 있는 한, 고려는 도덕적으로 죽지 않는다. 그가 사라지는 순간, 조선 건국은 ‘가능’에서 ‘시간 문제’로 바뀐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시작된다. 정몽주가 지키려 했던 고려는 사라졌지만, 정몽주가 신념으로 삼았던 성리학적 질서는 조선의 국가 운영 원리가 된다. 조선은 이성계의 결단으로 출발했지만, 그 이념적 기반 한쪽에는 정몽주의 그림자가 놓여 있다.

선죽교의 밤
정몽주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선죽교의 밤

결론: 승자와 패자가 아니라, 두 개의 국가관

이성계는 “국가가 백성을 살리지 못하면 교체될 수 있다”는 실행의 정치를, 정몽주는 “정통이 무너지면 규칙 자체가 붕괴한다”는 규범의 정치를 대표했다. 조선 건국은 한 사람의 승리가 아니라, 두 가치가 충돌하며 만들어낸 결과다.

조선의 시작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이성계와 정몽주를 함께 바라봐야 한다. 역사는 흑백이 아니라, 선택의 층으로 만들어진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